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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보도언론 모니터 보고서

1. 들어가며

2022년 9월 14일 서울시 2호선 신당역 역내에서 근무하던 서울교통공사 여성 직원이 동료 남성 직원에게 살해당했다. 9월 14일 범행 직후 가해 피의자 전주환은 시민과 사회복무요원, 직원들에게 제압되어 곧바로 체포되었고 15일 구속되어 17일에는 경찰이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상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19일 피의자 신상공개가 이루어졌고, 21일 보복살인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전주환은 2019년 11월부터 피해자를 스토킹했고 2021년 10월 피해자가 신고하자 350개 이상의 협박 문자를 보냈다. 피해자의 고소가 이어지자 재차 합의를 요구하는 협박 메시지도 보냈다. 결국 2022년 1월 스토킹범죄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가 이뤄졌고 2월 기소되었다. 전주환은 재판 도중, 그것도 1심 선고 전날 피해자를 살해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젠더폭력범죄에 여전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021년 10월 피해자의 첫 스토킹 신고 당시 경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주소 분명하고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기각했고 이후 기소될 때까지 구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의 신고나 고소 이후 피의자의 스토킹과 협박은 더욱 심각해졌으나 수사기관은 스토킹 중단 경고 문자 외에 가해자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추가적인 신변보호 요청 등 조치를 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강력범죄로 이어질 우려가 큰 스토킹 가해자에게 수사기관이 자체적으로 취할 조치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법적, 제도적 취약점으로 꼽힌다. 피의자의 주거, 도주 우려 등만을 고려한 구속 기준과 가해자의 직업이나 반성문까지 양형이나 구속 여부에 참작하는 사법부의 판단 기준도 도마 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2021년 10월 제정된 스토킹범죄 처벌법의 친고죄 조항으로 인해 가해자가 협박이나 회유로 합의를 강요할 시 피해자가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가장 결정적 문제점으로 꼽혔다. 법무부는 곧바로 친고죄 폐지 추진을 선언했다.

피해자와 피의자가 근무한 서울교통공사의 운영 및 고용 실태에서도 허점이 나타났다. 피의자는 2019년 12월 채용 당시 이미 음란물 유포 전과 2범이었으나 입사가 이뤄졌다. 공사 인사규정 및 지방공기업법 상 수원 장안구청의 결격사유 상의 범죄 범위가 매우 협소하여 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공사 근무 중 이미 스토킹과 불법촬영으로 직위해제 상태였음에도 범행 당시 내부망에 자유로이 접속하여 피해자 동선 및 근무지를 파악한 점도 운영 부실로 지목됐다. 피해자가 범행에 노출될 당시 홀로 순찰 중이었던 사실도 근무제나 인력 부족 문제를 검토해봐야 할 취약점이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워낙 충격적이며, 우리 사회의 미비한 시스템을 점검해야 할 필요가 절실히 대두되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매우 컸다. 빠른 시간 안에 범행의 동기와 경위, 제도적 법적 미비점까지 상당 부분이 드러나면서 보도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났다. 9월 14일부터 17일까지는 사건 발생 초기인 동시에 사건의 성격과 구조적 원인이 어느 정도 밝혀진 시기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포털 네이버 뉴스 검색 기준 ‘신당역 살인’을 언급한 보도를 수합하여 스토킹 살인 범죄 전반과 사회적 구조적 원인에 대한 언론 보도의 양상을 검토했다.


2. 사건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에 따른 보도 분석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신당역 살인’을 언급한 총 보도량은 1,592건으로 하루 평균 400건 가량의 보도가 쏟아졌다. 언론 보도 양상에서 언론이 이 사건을 어떤 범죄로 보고 있는지 우선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스토킹범죄 처벌법 제정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스토킹 범죄 인식 및 제도 수준이 아직 성숙되지 못했으며 언론 역시 스토킹 범죄를 포함한 젠더폭력이나 성인지 감수성 이슈에서 여전히 한계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어떻게 정의내려야할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법적인 개념의 보복범죄라고 칭하기도 하고, 스토킹 범죄라고 칭하기도 하며, 여성혐오 폭력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모든 정의가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일정 측면에서는 적절하다. 수사 결과로서 드러난 이번 지하철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성격은 스토킹 살인과 피해자의 신고와 고소에 대한 보복살인 두 가지이다. 법률 상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 사건임으로 보복범죄라고도 칭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복’이라고 하면 피해자가 어떤 원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범행의 시작이자 보복살인의 단초가 되기도 한 것이 스토킹 범죄이기 때문에 스토킹이 본질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스토킹 범죄라고만 칭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스토킹 범죄는 남녀노소 누구나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이 사건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1) 스토킹 범죄 강조한 보도

총 1,592건의 보도 중 ‘스토킹’을 언급한 보도가 1.291건, 81%이었다. 한편 보도에서 ‘보복’을 언급한 보도는 445건(28%), ‘원한’을 포함한 보도는 85건(5%)였다.


△<그림1> 신당역 스토킹범죄 관련 보도 중 범죄 유형 키워드 언급량

(9.14~17 네이버 검색기준, 총 보도량 1,592건 중 중복 언급 포함 보도량)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사건 초기에는 중앙일보 <신당역 살해범 "만나달라" 연락만 350번…징역 9년 구형받았다>(9/16)와 같이 범행의 시발점이 된 가해자의 스토킹 및 협박 정황 위주로 보도했다. 그러나 점차 많은 언론이 사건의 근본적, 제도적 원인을 짚으면서 대부분의 언론이 스토킹 관련 법을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총 1,592건의 관련 보도 중 249건(16%)가 ‘스토킹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언급했으며 보복살인 적용의 근거가 된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을 언급한 보도도 178건(11%)로 적지 않았다. 살인을 막지 못한 제도적 한계로 꼽힌 ‘불구속 상태 수사 및 재판’도 언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구속영장 기각’을 언급한 보도만 312건(20%)로 스토킹 관련법보다 보도량이 많았다. 단순히 스토킹이 살인으로 이어진 표면적 양상에만 그치지 않고 법적. 제도적 접근으로 사회 구조적 원인을 살펴봤다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스토킹 관련 언급 보도들이 보도 대부분은 수사 결과를 받아쓰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합뉴스 <경찰, 신당역 역무원 살해범에 '보복살인' 혐의 적용키로(종합)>(9/17)은 경찰이 형법상 살인에서 특가법상 보복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했다고 전하며 “전씨는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14일 밤 범행”, “전씨는 흉기를 미리 준비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정황”, “전씨는 범행 약 8시간 전인 14일 오후 1시 20분께 자기 집 근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1천700만원을 찾으려 시도”, “경찰은 범행 후 도주 자금으로 쓰려한 게 아닌지 의심”, “신당역 도착 후 1시간 넘게 역내에서 기다리던 전씨는 범행 30분 전 피해자를 한차례 마주치기도”, “그는 일회용 위생모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을 목적으로 추정” 등 범행 과정을 열거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관련 법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법의 맹점에 대한 지적보다는 수사 결과를 정리한 수준의 보도도들이 많았다.

스토킹범죄 처벌법 언급 보도가 249건이었으나 이 중 현행법의 대표적 한계점으로 꼽히는 ‘반의사불벌’은 17건, ‘친고죄’는 11건에 불과했다. 이렇게 반의사불벌이나 친고죄라는 문제점을 언급한 보도는 바람직한 편이다. MBN <뉴스추적/신당역 죽음 못 막은 '스토킹 처벌법'>(9/16)은 “스토킹 범죄 상당수가 과거 연인 사이, 혹은 평소 알던 사이에서 발생하는 만큼 보복이 두려운 피해자가 실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고소나 가해자의 재판이 진행 중인 과정에도 전자발찌 부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한국일보 <내달 시행 1년… 스토킹범죄 못 막는 스토킹처벌법>(9/17)은 다른 스토킹 사례 중 가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써달라고 종용, 협박하여 결국 집행유예를 받아낸 경우를 들어 “스토킹범죄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스토킹처벌법의 한계”,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하면 형사처벌을 못하는 '반의사불벌죄'의 맹점”이라 비판했다.

법의 허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좋은 보도들도 있다. 장기간의 스토킹에도 가해자가 불구속 상태여서 살인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담은 보도들이다. 일례로 연합뉴스TV <3년 스토킹에도 불구속…"피해자 안전 적극 고려해야">(9/16)는“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 가해자 전모씨는 3년간 피해자를 스토킹하고 협박했지만, 구속을 면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 구속 사유를 일정한 주거지가 없거나 증거인멸, 도망의 염려가 있을 때로 규정합니다. 전씨도 주거가 일정한 점 등을 이유로 구속을 면했는데, 일각에서는 전씨가 회계사 자격증이 있는 점 등의 직업적 안정성도 법원이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스토킹 피해자와 가해자를 강제로 분리하지 못한 게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입니다”라며 법 규정과 재판부의 구속 사유 판단 기준의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경찰과 검찰, 법원이 구속영장을 청구, 발부할 때 요건을 좀 더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 “법원은 피고인의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가 중대한지, 재범의 위험은 없는지, 피해자나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스토킹이나 성범죄에 관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가능성이 높은 만큼 피해자 위해 우려를 더 고심해야 한다” 등 대안도 언급했다.

보도량이 많지는 않으나 이번 사건으로 언론이 새롭게 주목한 사법부의 문제점도 있었다. 바로 가해자, 피의자의 ‘반성문’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심지어 구속이나 양형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반성문’을 언급한 보도는 54건이었는데 언론은 특히 가해자의 “반성 없는 반성문”에 주목했다. 한국일보 <변명만 담긴 반성문 내고 피해자에 합의 요구... 살해범의 민낯>(9/16)은 “(가해자가)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십 장의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법정 밖에선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재판에 넘겨진 뒤 A씨(가해자)는 3차례에 걸쳐 수십 장의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반성문엔 변명만 담겼을 뿐 뉘우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고 피해자 변호인은 설명했다”고 전했다.

아시아경제 <이수정 "낮엔 반성문, 밤엔 살인…스토커 인권 지켜주면서 피해자는 못 지켜">(9/16) 등의 보도에서는 전문가 의견도 다수 인용됐다. 이수정 교수는 "피고인에게 (자신의 범죄를) 방어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를 다 준다" "상습 스토킹인데도 구속영장 청구도 하지 않고, 주소가 분명하고 직업이 분명했다는 이유로 재판에서 유리할 수 있는 정황을 내도록 기회를 다 준다" "피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최대한 배려했고, 경찰도 법원도 반성문을 마지막까지 받아주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적 없다"고 성토했다.


△<그림1> 신당역 스토킹범죄 관련 보도 중 관련 법률 언급량

(9.14~17 네이버 검색기준, 총 보도량 1,592건 중 중복 언급 포함 보도량)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2) 보복을 언급한 보도

‘보복’을 언급한 보도 대부분은 SBS <신당역 살해범 보복살인 혐의 적용…신상 공개 19일 결정>(9/17)처럼 수사 결과 확인된 법률 상 ‘보복실안’ 혐의가 인정되는 사실관계를 나열한 기사들이다. SBS는 “전 씨는 범행 전 흉기와 위생모를 미리 준비하고,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지와 근무 일정을 알아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래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전 씨의 죄명도 살인 혐의에서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로 변경됐습니다”라며 경찰의 혐의 변경과 그 배경이 된 수사 결과를 전했다. 문제는 ‘보복살인’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사건의 본질인 ‘스토킹’의 심각성이 묻히고, 이런 보도행태들이 자칫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이지만 그러한 양상을 보인 기사 사례도 있다.

조선일보 <“가해자가 보복이라니…” 커뮤니티 장악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9/15)는 사건 관련 SNS 반응을 모아 받아쓴 사례인데 이미 보도 제목에서 수사당국의 ‘혐의 적용’에 중점을 둔 위 SBS 보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복’을 부각하고 있다. ‘보복’에 대한 분노 감정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함께 명시된 ‘스토킹’보다 ‘보복’에 주목하도록 유도하는 제목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15일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는 ‘신당역 역무원’ ‘서울교통공사 동료’ ‘직위해제’ ‘화장실 몰카’ ‘계획범죄’ 등의 관련 키워드가 올라왔다. 트위터 트렌드는 트위터에서 급부상 중인 가장 인기 있는 화제를 보여준다. 해당 키워드들은 모두 합쳐 5만번 넘게 언급됐다.”고 했다.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화장실 몰카’라는 부적절한 용어까지 굳이 보도할 필요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또한 “묻지마 살인이어도 무서운 사건이었는데 보복 살해라니.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할 말을 잊게 하는 쓰레기” “자기가 가해자로 재판받으면서 대체 뭘 보복한다는 건가” 등 ‘네티즌들의 분노’를 인용한 뒤,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따로 언급하며 거기서도 “스토커를 그냥 자유롭게 다니게 놔뒀다가 신고자가 보복당한 거라면 판사도 책임져야 한다”와 같은 의견이 “다수였다”고 강조했다. 이런 공분이‘남성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이 일고 있다는 점을 굳이 취재해 보도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와 같은 사안이 발생하면 ‘남성 커뮤니티’에 가서 그 반응을 보아야만 사실관계를 인정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굳이 이런 취재를 했다는 것이 한심하기 짝이었다.

3) 원한을 언급한 보도

‘원한’을 언급한 기사는 전체 보도 중 5%로 매우 소수였다. 뉴스1 <‘신당역 살인 사건’ 전말, 재판 과정서 원한 “오래전 계획, 70분 기다려”>(9/15)와 같은 제목을 뽑은 보도들이다. 경찰이 ‘원한에 따른 보복 살인’이라는 브리핑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굳이 이와 같은 보도에서‘재판 과정서 원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마치 피해자가 뭔가 원한을 살만한 부적절한 고소를 하거나 해코지를 한 것으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원한을 언급을 부각했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4) 사건의 구조적 원인에 천착한 보도

앞서 살펴봤듯이 상당수의 보도는 사건을 ‘스토킹 살인’으로 규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건의 원인 역시 가해자의 스토킹으로 지목했다. 스토킹은 성폭력과 함께 대표적인 젠더폭력 기반 범죄이므로 사회 구조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언론이 사건의 구조적 원인에 어느 정도 천착하였는지 별도로 살펴봤다.

총 1,592건의 보도 중 ‘구조적 문제’ ‘구조적 원인’ ‘구조적 성폭력’ ‘구조적 성차별’ 등 ‘구조적’ 요소를 언급한 사례는 42건에 그쳤다. 그 중 ‘구조적 성폭력’은 2건, ‘구조적 성차별’은 9건에 불과했다. ‘구조’라는 키워드를 꼭 쓰지 않고도 구조적 원인을 다룰 수는 있겠으나 언론이 전반적으로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나 배경에는 소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나온 42건 중 절반 가량은 정치권에서 사건을 ‘구조적 성폭력’으로 보느냐 여부를 두고 벌어진 정쟁을 전한 보도였다. 그 외에도 인용 보도 사례가 많다. 이데일리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신당역은 지금>(9/16)는 사건 현장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를 인용한 보도로서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바뀌지 않은 시대에 남성으로서 죄송합니다”,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시민의 안전이 먼저였던 여성의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등 인용된 추모 메시지 중에는 “젠더폭력은 구조적·문화적 성 차별이 만든 젠더폭력입니다”, “구조적 문제를 알고 노동자를 여성을,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아 주세요. 노력해주세요. 알아주세요. 제발”, “STOP FEMICIDE”와 같은 구조적 원인을 언급한 사례가 있었다. 이는 언론이 직접 구조적 원인, 배경을 다룬 것이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옮긴 것일뿐이다.

구조적 문제를 다루더라도 전문가 의견에만 의존해 사실상 ‘인용 보도’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한국일보 <사람 많았던 밤 9시...신당역 살인이 가능했던 '구조적' 이유는?>(9/16)는 제목에서 ‘구조적 이유’ 찾기를 목표로 제시했으나 ‘구조적 이유’를 전문가 의견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9월 16일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CBS라디오 인터뷰를 길게 인용했다. 그 내용은 ▲ “가장 큰 문제는 (스토킹처벌법이) 친고죄라 피해자와 합의하면 사건이 철회된다. 이 때문에 스토커들이 계속 피해자를 쫓아다니면서 합의를 종용하며 협박한다는 얘기는 입법할 때부터 얘기” 등 스토킹범죄 처벌법의 허점, ▲“감시의 대상이 잘못돼, 스토커를 감시해야 하는데 피해자를 감시하는 제도 운영” 등 피해자 보호 대책의 미비 ▲“코로나19 초기엔 확진자 전원 스마트폰에 앱 깔아 위치 추적, 감염자 집에서 나가면 지자체가 전화, 그 정도 앱 개발 어렵지 않은데 왜 스토커 휴대폰에는 피해자 접근 확인 못하나, 그런 방안 생각 안 하나” 등 피해자 보호 위한 대안 제시 등이다. 한국일보는 여기에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 주거 부정 같은 현행법상 구속 사유로는 스토커 A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쉽지 않다”며 피해자 향한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에도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구속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점을 추가하기도 했다.

소수지만 언론이 직접 취재나 분석을 통해 구조적 원인을 제시한 보도도 있다. 아시아경제 <예견된 신당역 참변..지하철 야간 근무자 2명뿐인 곳 과반>(9/17)는 한국철도공사 운영 전국 전철역을 전수조사하여 역무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드러냈고 이를 통해 성폭력, 강력범죄에 취약하다는 점도 보여줬다. 아시아경제는“56%에 육박하는 전철역에서 야간(오후 7시 이후)에 근무하는 역무원이 2명에 불과”하여 “하루 평균 3만 6000여명이 이용하는 압구정로데오역을 비롯해 독산역, 남영역 등 전국 71개 전철역이 19시 이후 야간에 근무하는 직원이 2명에 불과, 심야 순찰을 비롯해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한 명은 역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므로 구조적으로 1명만 출동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철도공사가 관리하는 126개 역사 중 야간에 3인 이하의 역무원이 근무하는 역사는 103개로 82%”에 달해 사실상 대부분의 역무원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3. 부적절한 보도 행태

지하철역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 보도는 기존 스토킹 사건에 비해서 언론의 집중도가 높았으며, 이와 같은 살인이 벌어지기까지 우리 사회가 어떤 허점을 가지고 있는지 다각도로 짚은 보도들이 이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유감스런 보도행태는 있었다.

1) 과도한 단독 보도 경쟁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는 많은 언론사들이 취재에 나서면서 ‘단독 경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지하철역 스토킹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였는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무분별한 단독보도 양산은 부적절한 보도로 이어졌다.

대표적 사례는 사건의 내막이 막 알려지던 사건 다음날 나온 조선일보 <단독/신당역 화장실서 女역무원 피살, 스토킹하던 前동료 범행이었다.>(9/15)이다. 이 기사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면서 악용한 불법촬영물의 내용을 인용했고 “두 사람이 연인관계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덧붙였다. 연인 관계를 암시한 것은 가해자의 일방적 주장이었고 피해자가 지속적인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고 신고 및 고소까지 이른 사실이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확인되지도 않은 ‘연인관계’를 굳이 언급한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사적 관계를 부각하면 스토킹 살인이라는 심각한 젠더폭력 강력범죄를 ‘치정에 의한 살인’ 등으로 왜곡할뿐 아니라,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의 우려도 크다. 결국 유족이 직접 해당 기사를 지목하여 “선정적 보도 자제해 달라. 마치 둘이 사귀면서 가해자가 같이 지낸 영상 유포 협박으로 조선일보가 보도, 얼토당토 하지 않은 내용”이라 토로하기까지 했다. 조선일보는 9월 16일, 문제가 된 내용을 삭제하는 등 기사를 수정했으나 여전히 “몰카 영상 유포하겠다 협박” “경찰은 원한 관계 따른 보복범죄로 판단”과 같이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한 용어를 남겨뒀다. ‘몰카’는 불법촬영의 잘못된 표현이며 경찰의 판단을 인용한다고 해도 ‘원한’과 같은 불확실한 감정적 표현 보다는 특가법 상 조항이 있는 ‘보복범죄’만 기재할 필요가 있다. ‘몰카’ ‘원한’은 모두 독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것으로 오인하거나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다. ‘몰카’를 쓴 기사는 16건으로 극소수였으나 여전히 이 용어를 쓰는 보도가 등장한다는 점이 아쉽다.

조선일보 사례처럼 문제가 된 기사가 아니더라도 단독보도는 짧은 기간에 양산됐다.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 기준 ‘신당역 살인’을 언급한 1,592건의 보도 중 ‘단독’을 제목에 명기한 보도만 35건이었다. 사건 관련 유의미한 사실관계를 면밀한 취재로 밝혀낸 단독 보도도 있지만 상당수는 수사 주체인 경찰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식들을 시간차로 먼저 보도해 ‘단독’을 붙이는 양상이 뚜렷했다.

일례로 민영통신사 뉴스1의 경우 이기간 단독보도가 12개로 총 35개 단독보도 중 무려 1/3가량을 차지했는데 이중엔 [<단독/호송되는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9/15), <단독/치료 마치고 호송차량 탑승한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9/15) 등 가해자가 호송되는 비슷한 사진들로 채운 ‘호송 사진 단독보도’만 10개이다. 사실상 무의미한 사진기사에 ‘단독’만 붙인 꼴이다. 이는 ‘단독’을 붙여 조회수를 확보하려는 상업주의적 발상의 결과다.

이외에도 TV조선 <단독/신당역 20대 역무원 살해 남성은 '역무원 입사 동기'>(9/15), 세계일보 <단독/신당역 역무원 살해한 30대男, 위생모 쓰고 범행…계획범죄 무게>(9/15)의 단독보도들은 경찰에서 흘러나오는 새로운 뉴스에 일일이 ‘단독’을 붙인 보도가 줄을 이었다. ‘가해자는 역무원 입사 동기’에 ‘가해자는 위생모 쓰고 범행’을 추가하는 ‘실시간 업데이트’ 방식으로 많은 매체가 과도한 경쟁에 나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비극’에 단독을 붙여 ‘클릭 수 장사’에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경찰 소스가 아니더라도 무의미한 정보에 ‘단독’을 붙여 조회수 장사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 단독보도는 또 있다. TV조선 <단독/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 2016년에 공인회계사 합격>(9/16)경우 “공인회계사협회 관계자”를 취재하여 “살인 피의자 남성이 지난 2016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었던 것이 맞다”, “이듬해 1년 간의 실무수습 기간을 마치지 못해 정식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 “피의자는 공인회계사 실무수습을 포기한 다음해인 2018년에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해 역무원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전했다. 물론 다른 기사에서 가해자가 ‘회계사’ ‘서울교통공사 직원’ 등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불구속을 유지한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이 기사는 그러한 제도적 문제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 오직 ‘가해자가 공인회계사 시험도 합격한 사람이다’라는 정보만 담긴 짧은 단독보도다. 이런 기사는 ‘단독’으로 주목도를 확보한 후 오히려 ‘가해자가 전문직이구나’라는, 일종의 ‘가해자 서사’를 독자들에게 심어줄 위험이 있다.

물론 단독보도라고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단독보도가 대부분이지만,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거나 제도적,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는데 꼭 필요한 단독보도도 소수 있었다. JTBC <단독/피해자가 신변보호 중 신고해도 80%는 '현장조치'로 끝>(9/17)은 해당 사건과 유사한 스토킹 살인 사건들 사례에서 “신변보호를 받는 경우에도 위험에 노출된 것”을 공통점으로 짚고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는 피해자가 또 다른 범죄가 걱정된다고 신고했을 때, 열에 여덟은 정식 수사가 아닌 경찰의 '현장조치'에 그친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신당역 살인 피해자가 신변보호 연장을 원하지 않았다고 알려졌으나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범죄 위험성을 판단을 했더라면, 스토킹 처벌법에 따라 '100m 이내 접근금지'나 '구치소 유치' 등의 잠정조치를 직권으로 취할 수 있었다”고 덧붙여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게 할 대안도 제시했다.

2) 가해자의 범행을 불필요한 수준으로 구체적 또는 선정적으로 묘사한 보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을 다룬 수많은 보도들 중 앞서 살펴본 사례들처럼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 가해자 서사 부여, 사건 왜곡 등 심각한 수준의 문제점을 보인 사례는 극소수이다. 다만 사건 경위 관련 사실관계가 수사기관 등으로부터 확인 되는대로 나온 발생 기사들, 사건의 참혹함을 이용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 사실관계의 상세한 묘사를 덧붙인 통상적 보도들 전반에 걸쳐 우려스러운 요소들이 있다. 그중 가해자의 범행을 불필요한 수준으로 구체적 또는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심각했다.

서울신문 <신당역 여 역무원 살해 30대 …‘흉기 들고, 샤워캡 쓰고’ 1시간 기다렸다>(9/15)의 경우 경찰이 가해자의 보복살인을 위한 계획 범죄라 판단한 정황을 받아쓴 통상적 보도로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만남을 요구하며 스토킹해왔던 동료 역무원”이라는 점,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무하다가 직위해제된 전력”이 있다는 점 등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핵심 요소들을 전했다. 주목할 점은 유독 ‘샤워캡’ ‘위생모’를 강조하며 그걸 ‘계획범죄’의 주요 요소인 것처럼 기술했다는 점이다. “A씨는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 당시 A씨는 일회용 위생모를 쓰고 약 1시간 10분동안 B씨를 기다렸고, 준비한 흉기를 휘둘러 살해했다”는 대목인데 경찰이 ‘위생모’가 ‘계획범죄’의 핵심 근거라 발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보도들에서 확인됐듯이 사전에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에 접속해 피해자 주소를 알아낸 후 집 근처를 배회하며 다른 여성들을 미행한 사실, 피해자 근무지와 근무시간을 파악한 사실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계획범죄’로 판단한 것이다. 유독 이 보도에서는 9월 15일 다른 추가 정황들이 나오기 전에 경찰 발표 중 극히 일부인 ‘위생모’만을 부각해 따로 기사를 생산, 사건의 부차적이고 국소적인 요소로 자극성만 키워 이목을 끈 것이다. 조사 기간 전체 보도 1,592건 중 ‘샤워캡’을 언급한 보도가 78건으로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9월 15일 이런 기사들이 집중됐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도 없다.

3) 실제 기사본문과 전혀 무관한 제목으로 조회수 장사하는 보도

기사 본문과는 전혀 무관한 제목으로 조회수 장사를 하는 보도도 문제이다. 위키트리 <신당역 여자화장실서 살해 당한 20대 역무원, 가해 남성과 '뜻밖의 관계' 드러났다>(9/15)의 경우 제목에서 ‘가해자와 뜻밖의 관계’라는 사실과 다를뿐 아니라 선정적이면서 피해자를 모욕할 위험이 큰 표현을 썼다. 하지만 정작 기사 본문은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피의자가 피해자와 아는 사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의자와 피해자가 재판으로 얽힌 관계였다”라는 내용이다. 노골적인 ‘제목 장사’라 사례인데 장삿속으로 2차 가해를 자행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대형 매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YTN <자막뉴스/늦은 밤 울린 비상벨...여자화장실서 벌어진 일>(9/15)와 같은 제목도 비슷한 사례다. 사건 다음날 범행 현장과 가해자의 범행 과정을 간단히 전한 평범한 보도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제목을 한 편의 미스테리 소설처럼 뽑았다. 이러한 제목은 비단 제목 장사라는 점만이 아니라 이용자로 하여금 불필요한 상상을 하도록 자극한다는 점에서도 부적절하다.

4. 모범적 보도 사례

선정적이고 무의미한 단독 경쟁, 범죄의 극적 묘사, 부적절한 용어 사용 등 일부 보도에서 문제점이 드러났으나 하루 평균 400건 가량의 관련 보도 전반은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소수 보도에서는 법적, 제도적 원인을 보여주려 노력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하지 못하는 사법부 판단 기준의 미흡함이나 법의 허점이 특히 언론의 주목을 받은 편인데 그런 보도 중에는 구체적, 객관적 분석까지 나아간 사례도 있다.

1) 디지털성범죄 판결문 분석해 가해자 봐주는 법원 지적한 경향신문

경향신문 <“사법부는 내 편” 성범죄자의 큰소리, 빈말이 아니었다>(9/19)는 2021년 4월부터 8월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성착취물 소지 유포 및 게시, 불법촬영, 음란물 유포 사건 1, 2심 판결문 275건을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디 “징역, 금고 등 실형은 20건 7.3%에 불과”했고 “집행유예가 61.5%, 169건”에 이르렀으며 “벌금 29.1% 80건, 선고유예 2.2% 6건”이었다. 놀랍게도 법원이 선처한 피고 중엔 아동 청소년 성착취범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 홍보에 가담했던 남성, 성착취물 4875건 소지하고 유포한 남성까지 포함되어 있었는데 양형 사유는 “시험 낙방, 유망학과 재학, 군무원 준비, 군대 입영, 반성의 기미” 등이었다. 선처의 이유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무려 250건 판결문에 ‘반성’ 명시”했고 “155건에서 ‘동종전과 없거나 초범’”이라는 이유로 선처했으며, “‘피해자 합의’는 81건”, “‘자발적 삭제’로 감경도 23건 8.3%”나 됐다. 이를 통해 경향신문은 “신당역 사건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 받은 것도 법원의 ‘아량’ 때문”이라 지적했다.

2) 성범죄자 감형 패키지 실태 고발한 KBS

방송 보도 중에는 KBS <시사직격/“존경하는 재판장님께” - 성범죄자의 반성문과 감형>(9/16)를 주목할 만하다. KBS 역시 성범죄자를 ‘선처’하는 사법부의 판단 기준, 양형 기준을 비판했는데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성범죄 감형 패키지’가 변호사 업계에서 판치고 있음을 고발했다. 지적장애 여성에 대한 강간치상혐의하여 검찰이 징역 6년을 구형했으나 재판부가 소년부로 송치해버린 17세 김 군의 경우 법원은 가해자 김 군이 “수차례의 상담확인서와 소견서, 심리학적 평가보고서 등을 제출하며 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호소”하고 수 차례 자필 반성문으로 선처를 호소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KBS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반성문은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 여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으로 시작하여 '죄송합니다'라고 마감한 한 장의 문서가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약화시키는 근거로 인정되는 현실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KBS 취재 결과 “놀랍게도 온라인에서는 성범죄 가해자들의 반성문 대필 사이트는 물론이고, 감형을 컨설팅해준다는 업체까지 등장하여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성범죄 전문을 표방하는 한 로펌이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무려 10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성범죄 관련 정보를 공유”, “재판 결과를 공유하는 게시판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끝내 살아돌아왔다'며 감형 성공사례를 공유하며 서로 축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형을 위하여 헌혈증, 상장, 생활기록부, 장기기증서약서, 초음파 사진, 가족까지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거나 감성에 호소하는 온갖 수단들이 양형자료로 동원”됐으며 “반성문 자동작성 프로그램을 통하여 문장 조합으로 최대 10만 개의 반성문을 만들어내는 데 드는 비용이 3만 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여성단체 기부”까지 ‘성범죄 가해자’의 ‘반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법원에 제출됐다. 이러한 양형 수단들을 로펌이 “50만 원대의 감형 패키지”르 팔고 있었으며, 이를 구매하면 “반성문-탄원서에서 실제로 진행하지 않은 심리상담서나 자원봉사 후원 계획서까지” 발급받는다고 한다.

사실상 사법 체계를 속이고 기만하는 ‘감형 패키지’를 법원이 별다른 검토 없이 받아들이면서 유독 성범죄에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성범죄 양형에 대한 사회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게 KBS 보도의 결론이다. 끔찍한 범죄에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할 일들을 짚어주는 좋은 보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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