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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보도가 학교폭력을 닮았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김언경의 미디어안경/학교폭력 보도가 학교폭력을 닮았다'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청취자의 사연을 받아 읽어주고 대신 '버럭' 화를 내주는 라디오 코너가 있는데, 은근히 재미있다. 어제 내가 들은 사연의 주제는 '폭력'이었다.


최근 운동선수, 오디션 출연자의 학교 폭력 전력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어서 선택된 소재였을 것이다. 청취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학교 선생님의 폭력, 군대에서의 폭력, 밴드부 선배의 폭력 사연이 이어졌다. 폭력의 종류도 언어폭력에서부터 심각한 구타, 성폭력까지 다양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 국가에서는 자신들의 눈 밖에 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했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고,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가정폭력도 난무했다. 어른들이 그렇게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고 배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많은 아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며, 그보다 더 훨씬 많은 아이가 소극적 가담자이거나, 방관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위치는 고정적이지도 않아서,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방관자였다가 가담자가 되고, 그러다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지옥 같은 상황이었지만, 어른들은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해주지 못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출판된 지 35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엄석대'를 묵인하며 이용하는 어른들이 존재한다. 애초 과정보다는 결과를, 인성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엘리트 중심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던 학교 폭력은 최근의 유명인 학교 폭력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SNS의 발달이라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이것이 무한 공유될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예전에 나를 괴롭혔다'라는 폭로글이 이전과는 다른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오디션 하차부터 국대 자격 박탈까지


처음엔 주로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거론되었다. 2013년 SBS <K팝스타3>에서는 절대음감이라며 극찬을 받았던 10대 여성 출연자가 일진 설에 휩싸였으나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채 하차했다. 2013년 Mnet <슈퍼스타K 6>에서도 예선통과자가 본선에서 자진 하차했다.


이처럼 아직 본격적인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텔레비전에 출연해 인기를 얻기 시작한 사람에 대한 폭로는 연예인과 운동선수에게도 이어지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밴드 잔나비의 멤버가 학교 폭력 논란으로 밴드를 탈퇴했고, Mnet <프로듀스X101>에 출연한 연습생이 학폭 논란으로 하차하고 연습생 계약마저 해지되었다. 여기에 TV조선 <미스트롯2>에 출연해서 인기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던 진달래씨도 학교 폭력 전력을 인정하고 하차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선수에 대한 소식이었다. 그들은 학교 폭력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여론은 잠잠해지지 않았고, 협회는 그들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고, 소속사는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징계 조처를 내렸다. 여론의 심각성을 본 결과일 것이다.


이 같은 변화에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2016년 미투 운동 이후, 성희롱·성폭력 이외에도 약자에 대한 폭력에 분노하고 피해자 고통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만큼 학교 폭력의 피해에 대한 공감이 크고, 학교 폭력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국민의 감정이 증폭된 것이다.


장사에만 열중하는 '학폭 보도'


그렇다면 언론의 학교 폭력 보도는 어떤가. 통상적으로 어떤 사안이 여론화되고 해결되는 데는 언론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언론의 학교 폭력 보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은 대개 "누구도 학폭이라네?"라면서 폭로 글을 무책임하게 전달하고 클릭 장사를 한다. 이재영·이다영 선수 관련 보도를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폭로하면 폭로 글을 그대로 옮긴다. 사과하면 사과했다고, 하차하면 하차했다고 전하기만 한다. 현수막이 내려졌다고, 방송이 삭제됐다고, 계속 기사를 만들어낸다. 징계받는 것마저 모두 개별 기사로 만들어냈다. 커다란 햄을 아주 얇게 썰어 먹는 '살라미'처럼 그야말로 이 자매에 대한 소식 하나하나를 잘라서 팔아먹고 있다. 그야말로 '살라미 보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적으로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이재영 학교폭력'이라고 검색하면 올 2월 10일부터 18일 정오까지 관련 보도가 193건이나 된다. 이런 현상이 <조선일보>뿐일까? 네이버에서 같은 기간으로 '이재영 이다영 학교 폭력'을 검색하면 2466건의 기사가 나온다. 제목만 읽어봐도 시간 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파악할 수 있을 지경이다.


이렇게 학교 폭력 관련 보도가 많이 쏟아져나와도 정말 필요한 보도는 찾기 힘들다. 가해자의 실력이나 존재감을 언급하며 그들을 감싸는 듯한 보도도 있다. <데일리안>이 13일 보도한 기사는 제목이 "가해자 꿈도 산산조각, 학폭의 부메랑"이다. 소제목은 '어머니 못 이룬 올림픽 메달 꿈도 물거품 위기'와 '학폭 피해자-가해자 넘어 사회적 손실 초래 경고'이다.


물론 이런 황당한 수준의 보도가 많은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보도는 그냥 '불난 집 불구경' 수준이고, 적당한 훈계를 하는 보도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포츠 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설이나 논평도 나오고, 합숙 생활이 선수 간 폭력의 온상이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구협회는 물론이고 스포츠계가 대책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인 학교 폭력에 천착하고, 다양하게 접근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피해자들이 이런저런 주장을 했다고 전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이 담긴 기사도 별로 없다. 학교 폭력 피해자나 그 가족의 고통은 한두 문장으로 처리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 이에 비해 그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는 깊게 관심 갖지 않는 것이다.


가해자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불편하다. 그 가해자들이 아이일 때 정작 이를 지도하고 책임졌어야 하는 어른의 문제는 짚지 않는다. 이재영, 이다영 자매의 가해도 대부분 합숙소 안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곳의 인권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 가해자들이 가해를 저지를 때, 이를 책임지고 지도하고 꾸짖고 해결해주었어야 할 어른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그때 무엇을 했는지 전혀 묻지 않는다.


심지어 마찬가지로 학폭 전력이 드러난 남자배구 송명근, 심경섭 선수의 경우 피해자가 "배구선수가 되고 싶어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간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피해자가 제대로 문제 제기하고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조용히 넘어갔어야 했었다는 뜻인데, 이는 가해자들의 가해 사실보다 더욱 심각한 적폐 행위이다. 이에 대한 지적도 없다.


'학교 폭력 폭로 보도'의 홍수 속에 정작 학교 폭력 문제의 해결이라는 목표가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언론은 그저 이 논란을 기사화해서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에만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 눈높이, 국민의 정서, 국민의 인권 감수성을 따라오지 못하는 언론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사냥을 끝내고 해결에 나서라


언론은 이제부터라도 문제가 불거진 선수 개인에 대한 사냥놀이를 끝내고, 학교 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 수많은 학교 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살펴야 하고, 우리가 지금과 같은 '일벌백계' 이외에 어떤 조치를 해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더불어 학교 폭력 보도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현재의 학폭 논란 보도는 대부분 모든 폭로성 글을 무조건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은 다른 제보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검증 취재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가해자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서 나아가 배우, 기자, 공무원에서 사실상 활동하는 모든 사회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커지고 있는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가해자가 '공인'일 때만 보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거나, 입증이 어려운 과거의 일이기에 명백한 범죄로 기록된 사안만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논의의 전제에는 '학교 폭력을 없애자'는 분명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는 치열하게 하되, 성과가 있는 높은 사람, 실력이 있는 사람, 힘이 있는 사람이니 대충 지나가자는 언급은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식의 접근이 있었기에 이 문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 모두 가해자이며 공범자이며, 가담자이며, 방관자였다.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남의 스캔들로 소비하지 말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현실로 직면해야 한다.


<조선일보>에 대한 딴소리 하나

마지막으로 딴소리 하나 추가한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이다영 선수 관련 보도가 얼마나 많은지 검색하는 과정에서 황당한 기사 하나를 접했다. 2월 17일 기사 "괴롭힘에 팀 나왔던 김유리, 최근 학폭 논란에 던진 말"이다. 괴롭힘을 극복하고 11년 만에 경기 MVP가 된 선수를 인터뷰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기사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기사의 첫 문장은 황당했다.


"여자는 여자와 잘 지낼 수 있는가. 이 물음을 안고 GS칼텍스 센터 김유리(30)를 만났다. 평균 연령 23세 팀에서 김유리는 넉넉한 맏언니 리더십으로 '여초 집단은 살벌하다'는 편견을 깬다."


이어진 본문에서 김유리씨의 발언이 아무리 훌륭해도 리드문에서 드러난 기자의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마음이 닫혀 버리는 기분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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