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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따옴표 기사, '혐오표현'에도 악용된다

최종 수정일: 2020년 9월 21일

들어가며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의료계 진료 거부 사태가 맞물리며 최근 시민들의 일상도 혼란스러운데요. 9월 1일 검찰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추미애 법무부장관 자녀와 관련된 의혹 등 경제, 정치 전반에 첨예한 이슈가 잇따르면서 흔히 말하는 ‘뉴스거리’는 넘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 수많은 일들을 일상 속 시민들에게 전하는 유일한 창구가 바로 매체가 만드는 ‘뉴스’인데요. 요즘처럼 너무 많은 일들이 중첩되어 벌어지면 ‘뉴스’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최근 뉴스를 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하나는 주로 ‘확증편향’이라 부르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피로감’이지요. ‘확증편향’의 경우 몇몇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유튜브, SNS로 뉴스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선정적 또는 휘발성 뉴스 콘텐츠를 양산하는 매체들, 또 거기에 적응된 소비자의 습관이 얽혀 심화되고, 이에 따라 진실과 무관하게 ‘우리 편 얘기만 해주는 뉴스,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콘텐츠’가 성행하게 됐다는 것이죠.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이하 ‘뭉클’)은 미디어 소비자들의 시각에서 아직 뉴스 소비자들의 책임을 비중 있게 지적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아무리 유튜브나 SNS 상의 뉴스 소비가 일상화됐다고 해도 그러한 매체 환경까지 진출하여 지배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주요 신문,방송사 등 거대 매체이고, 그 매체들은 유튜브, SNS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관행이나 취재, 보도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죠. 논쟁의 대상인 ‘확증편향’은 빼놓더라도, 많은 시민들이 느끼는 뉴스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은 바로 그러한 ‘언론의 관행’에서 기인합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포털사이트의 뉴스 페이지나 언론사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언론의 습관’ 중 대표적인 것은 단연 ‘쌍따옴표 보도’입니다. 누군가의 입장, 발언,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기사죠. 출입처 제도와 같이 시민들이 목격하거나 자세히 알기 어려운 언론계 제도나 습관만큼이나 이러한 일상적 기사 형태가 주는 불신과 피로감도 상당합니다. ‘뭉클’이 ‘쌍따옴표 보도’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기사 형태가 인권 침해나 혐오,차별 조장에도 이용되거나 때때로 그러한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쌍따옴표 보도’, 얼마나 심하길래?

예나 지금이나 언론의 ‘쌍따옴표 보도’는 만연합니다. 기자협회보 <2020 상반기,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한 인물은?>(7/21)에 따르면 “7월 20일, 9대 종합일간지가 1면 제목에 직접 인용을 사용한 비율 44.4%”에 이릅니다. 꼭 이런 통계가 아니어도 ‘쌍따옴표 보도’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9월 1일, 20시 10분 기준으로 조선일보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최상단 톱보도 바로 아래 상단 기사 9건 중 7건이 ‘쌍따옴표 기사’입니다. 같은 시각 한국일보 홈페이지의 경우 11건 중 6건이 그렇습니다.

▲ 9월 1일 20시 10분 기준, 조선일보(좌) 한국일보(우) 홈페이지 첫 화면의 쌍따옴표 기사들
▲ 9월 1일 20시 10분 기준, 조선일보(좌) 한국일보(우) 홈페이지 첫 화면의 쌍따옴표 기사들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는 게 뉴스일까

언론의 ‘쌍따옴표 기사 습관’의 특성과 문제점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복잡한 이슈에서 화제가 된 소수의 인물만 남겨 그들간의 갈등이나 말싸움으로 사안을 환원, 축소하고 때로는 특정인을 이슈의 ‘최종 심급자’인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둘째, 특정한 입장을 지닌 일방의 행위자가 한 발언을 객관적이고 믿을만 한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셋째, ‘쌍따옴표 보도’는 언론의 입장에서 굉장히 편하기도 합니다. 이슈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나 분석 없이 권위자의 발언을 옮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죠. 그 권위자가 각광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회 수를 확보하기도 쉽습니다. 편의주의와 선정주의 역시 받아쓰기 관행가 유지되는 주요 동력이죠.

이러한 ‘쌍따옴표 기사’를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기피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특별한 정보를 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받아쓰기 기사’들은 “누군가 ~라고 말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같은 문장으로 끝납니다. 이러한 기사가 과연 공적 가치나 저널리즘으로서의 가치를 구현할까요? ‘누가 뭐라고 했대요’라는 문장 모음은 어떤 가치는커녕, 유의미한 정보조차 제공하기 어렵겠죠.


‘쌍따옴표 기사’, 인권 침해와 혐오의 도구로

‘쌍따옴표 기사’가 끼치는 사회적 악영향이 더욱 큰 사례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인권의 영역, 차별, 혐오의 영역에서 언론이 ‘쌍따옴표 기사’를 애용한다는 현실은 뼈아픕니다. 언론은 혐오 표현, 차별 조장이나 다름없는 기사를 쓰면서도 쌍따옴표를 통해 누군지도 모를 발화자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혐오, 차별 정서가 마치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처럼 과장합니다.

시사뉴스 <문래동도 붉은 수돗물…“일부 이슬람 난민 소행일수도”>(2019.6.21.)라는 기사는 문래동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를 두고 ‘이슬람 난민의 테러 가능성’을 쌍따옴표로 받아 써 강조했습니다. 상수도라는 공공의 기반시설에서 발생한 문제에 따른 대중의 공포, 불안을 틈타 혐오 정서를 심으려 한 사례입니다.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난민 이슈가 이제 갓 공론화되어 아직 논의가 설익은 우리 사회 분위기를 악용해 퍼뜨린 것이기도 하죠. 무고한 난민을 ‘테러범’으로 묘사한 근거는 익명 관계자의 발언, 상수도 테러 실제 사례도 아닌, ‘테러 가능성’이 언급된 해외 사례에 그쳤습니다. ‘허위정보’를 이용해 혐오를 퍼뜨린 전형적인 ‘가짜뉴스’, ‘혐오표현’입니다.

▲ 붉은 수돗물 배후로 ‘이슬람 난민’ 지목한 허위 보도
▲ 붉은 수돗물 배후로 ‘이슬람 난민’ 지목한 허위 보도

소수자 겨냥한 ‘출처 불명의 혐오표현’까지 ‘쌍따옴표’에 담겨

코로나19 국면에서도 감염병 사태를 지배하는 공포와 불안을 틈타 혐오를 전파한 ‘쌍따옴표 보도’ 사례가 많습니다. 국민일보 <“결국 터졌다”… 동성애자 제일 우려하던 ‘찜방’서 확진자 나와>(2020.5.9.), 강원일보 <게이가 알려주는 ‘블랙수면방’의 실체…“동물의 왕국이다”>(2020.5.10.) 등의 사례는 다중 이용시설이면 어디든 감염병 확산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장소의 성소수자 특성만 부각, 노출했는데요. 누군지도 모를 불특정 다수의 성소수자를 향한 부정적 반응이나 댓글을 쌍따옴표로 제목에 쓴 점이 두드러집니다. 성소수자에 문란하고 비위생적인 낙인을 덧씌우면서 동시에 코로나19 감염원인 것처럼 매도하는 결과를 야기합니다.

국민일보 <“게이인데 왜 입장 안내놓냐”…홍석천, 사이버불링 시달려>(2020.5.11.)의 경우 기사의 본래 취지가 정당하다고 해도 ‘쌍따옴표’라는 습관이 그 취지까지 훼손하며 혐오를 유포한 특수한 사례입니다. 이 기사는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 당시 일부 누리꾼들이 방송인 홍석천 씨에게 일종의 사상검증을 요구했다면서 이를 “온라인상에서 특정 인물을 괴롭히는 행위”라고 다소 비판적으로 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소수자성’을 지목해 공격한 발언, 심지어는 누가 말했는지 알 수도 없는 발언을 쌍따옴표로 제목에 뽑았습니다. 조회 수 장사의 의도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죠.

지난 6월 말, 정의당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안한 차별금지법 및 평등법 이슈로 넘어가면 이런 사례는 더 차고 넘칩니다. 국민일보 <“포괄적 차별금지법, 여성 역차별 부를 것”>(7.24.)은 차별금지법이 직접 강제하는 것도 아닌 “국공립대 여교수 의무 임용, 여성 고위공무원 의무 비율”을 거론하며 “차별금지법이 여성 역차별 부를 것”이라 우려하거나 “성전환자의 여성 화장실 사용”이라는 당연한 일을 “생각지도 못한 여성 역차별”로 지목한 발언을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국민일보 <“포괄적 차별금지법 시행 땐 ‘동성애의 죄성’ 설교 못한다”>(7.20.), 국민일보 <“차별금지법은 신앙의 자유 억압…법제정 좌시해선 안돼”>(7.23.) 등은 제안된 법들이 차별금지의 영역을 고용, 매매, 서비스, 교육, 행정 서비스로 명확히 정해놨음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왜곡한 주장을 설파했죠. 제안된 법안을 조금만 읽어봐도 들통 날 거짓말을 죄다 쌍따옴표로 담고, 그걸 또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언론 개혁의 첫 걸음, 일상 속 습관부터

‘쌍따옴표 기사’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엔 우리에게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지만 꼭 듣고 보아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죠. 언론은 그런 목소리를 전하고 공론화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앞서 살펴본 수많은 ‘실제 일상 속 쌍따옴표 기사’들은 전혀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강화하거나 복잡한 현안과 현상을 화제성 있는 소수 인물들의 싸움으로 환원, 축소하거나, 대놓고 할 수 없는 혐오를 대신할 누군가의 뒤에 숨기 위해 발생한 ‘쌍따옴표’들이 넘쳐날 뿐입니다.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월호 망언’을 한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를 대다수 미디어가 지탄했지만, 동시에 조선일보 <차명진 “세월호 유족 우롱한 ‘텐트 속 진실’ 밝혀지면 죽어도 좋아”>(2020.4.8.)와 같은 기사로 혐오 표현의 발화자에게 반론과 소명을 넘어선 ‘2차 혐오 표현’의 기회를 적극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지금도 보고 있을 ‘쌍다옴표 기사’의 대다수는 이런 종류의 기사, 즉 사라져야 할 기사들입니다.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공익적 의미를 지닌 ‘쌍따옴표 기사’가 아니라면 “누군가 뭐라고 했대요”라는 기사는 무의미하며 종종 해악이 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쌍따옴표의 특성상, 언론인들은 대단히 편의적인 방식으로, 또 무책임하게 소수자를 핍박하고 혐오를 확산시키며 교묘히 정치적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언론 개혁의 시작은 사실 그리 거창한 무엇이 아닐 겁니다.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핑계 삼지 않고, 쓰지 말아야 할 ‘쌍다옴표 기사’를 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2020년 9월 3일(목)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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