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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권적 게임 광고’, 나만 몰랐던 걸까?

[이 보고서는 오마이뉴스 기사 '김언경의 미디어안경/ '여성 성적도구화' 게임 광고, 2021년엔 멈추자'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하다가 광고 하나를 봤다. 언론사 온라인 홈페이지는 광고를 봐야만 기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오래돼서인지 웬만한 것에는 반응하지 않는데, 이 광고는 섬뜩하게 다가왔다.


선정적인 일러스트도 아니었다. 귀엽기까지 한 그림체다. 여성이 나무에 매달려 있고 아래는 여성을 발견한 남성이 있다. 그리고 '그녀를 돕는다 또는 약탈한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광고를 보고 섬뜩했던 것은 두 가지 착각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 여성이 나무에 목을 맨 것으로 봤고, '약탈한다'라는 글씨는 '겁탈한다'로 느꼈다.


불쾌감에 놀란 나는 이 광고를 저장해서 딸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딸은 "그다지 심각한 정도의 광고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딸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성 캐릭터가 목을 맨 게 아니라 상체를 꽁꽁 묶어서 나무에 매달아 놓은 것이라고 했다. '약탈한다'는 문구도 물건을 훔쳐 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매달린 여성은 보석이 박힌 왕관을 쓰고 있고, 옆에는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멋진 칼도 있으니 그것을 훔쳐 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딸의 의견을 듣고 나니 그림도 글씨도 제대로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 광고가 불쾌했다. 사람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응당 구하려 뛰어드는 것이 상식이다. 거기에 '약탈한다'라는 선택지를 만들어놓는 것이 기가 막혔다. '약탈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는다"지만, '(여성을) 약탈한다'는 성폭력의 의미로도 쓰인다.

내가 이처럼 비윤리적인 선택지를 준 이 광고를 비난하자, 딸이 이런 것이 넘쳐난다고 했다. 딸이 보여준 것은 '황제라 칭하라'라는 게임 광고였다. 이미지에는 '입궁 선발'이라는 제목 아래 시녀와 후궁이 그려져 있고 "여동생이 총애를 받았는데 어떡하죠"라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 '축복하기'와 '쟁탈하기'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이것 말고도 자매가 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갈등을 겪고 암투를 벌이는 설정의 광고가 여러 버전으로 등장했다.


여성을 인격체 아닌 성적 도구로 취급하는 광고들

심각함을 느끼며 게임 광고에 대해 더 살펴보니, 이를 지적한 기사나 SNS 게시글이 꽤 많았다. 이런 광고가 그간 유튜브에 넘쳐났는데 나는 유튜브 유료 서비스를 가입해서 광고를 보지 않았기에 현실에 둔감했다. 게임도 전혀 하지 않는다. 모바일 기기 사용 특성상 페이스북 광고도 많이 뜨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나의 흥분은 '뒷북'인 셈이었다.


한국에서 게임 광고의 선정성이 논란이 된 것은 2018년 즈음이다. 당시 가장 논란이 된 게임광고는 '국내 최초의 일부다처제 RPG'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왕이되는자'였다. 이 광고는 내가 앞서 말한 광고들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여성의 몸을 더듬는 콘텐츠나 옷을 벗기고 체벌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강간을 의미하는 '강제로 함'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아버지를 위해 몸을 판다는 등의 성매매 문구, 상의를 벗은 여성이 그려진 삽화에 '징벌', '총애', '장려'라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문구, 낙태약을 마시는 등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삼국지를 차용했다는 '짐의강산'이라는 게임 광고도 문제였다. 일러스트 속 초선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게슴츠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주공님 신장 여포를 생포했습니다. 초선이 용서를 구하려 왔으니 어떻게 하겠소"라는 문구 아래 '결혼', '참수', '석방', '고문'이라는 선택지가 제공됐다.


남성이 여성의 가슴을 강제로 만지는 상황을 그려넣는다. 그리고 병사가 여성을 희롱하면서 어떻게 할지 묻고 '욕하기', '강제제지', '즉시 참수', '함께 참여'라는 충격적 선택지를 주기도 했다.

일명 미소녀 액션 게임이라는 '걸스 레볼루션'이라는 게임 광고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이라기보다는 어린이에 가까워 보이는 어린 여성이 등장한다. 이런 그림에 "주인님 저한테 이런 행동을 하시면 안 돼요"라거나 "나를 원해요?"라는 카피가 쓰여 있다. "후배가 또 잘못했어요! 어떻게 벌을 줄까요?"라는 문구에 '키스'와 '포옹'라는 선택지가 제공되기도 한다. 미성년 성 착취, 아동 학대, 여성비하, 성적 대상화가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노출 광고만 문제가 된 것도 아니다. 2020년 10월, 유저가 '아빠'가 되어 '딸'을 키운다는 '아이들 프린세스' 게임 광고도 문제였다. 여성 아이돌 출신 인기배우를 광고모델로 기용해서 더욱 화제가 된 TV 광고는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성인 여성으로 보이는 모델이 남자 대학생에게 "아빠"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는 설정, 해맑은 표정으로 "딸 한번 키워보실래요?"라고 조르는 설정은 불편했다. 제작사 측은 캐릭터 콘셉트의 부적절성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수정하겠다고 사과했으며, 게임 사용등급을 18세로 수정하고 광고를 전면 중단했다.


반인권적인 광고가 무방비로 노출된 심각한 상황


이런 게임 광고는 여성을 인격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게임 광고 속 여성은 성적으로 농락하고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대해도 되는 존재다. 반인권적, 반인륜적, 반윤리적이다. 단순히 불쾌한 것은 넘어서서 'N번방'과 같은 여성착취 범죄와 맥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더 황당한 것은 광고만 본 시민들은 게임에 그런 내용이 포함돼 있겠거니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광고만 선정적이고 실제 게임을 다운받아서 이용해보면 그런 내용이나 설정이 전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게임 '아르카'도 실제로는 '12세 이용가' 게임인데 일부러 실사에 가까운 여성의 반나체 모습을 광고에 사용하면서 '19금 모바일 게임'이라고 홍보했다. 그야말로 선정적인 내용으로 유저를 낚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런 유해 광고 콘텐츠가 불특정 다수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로 뽀로로를 보는 어린이에게도 게임 광고가 노출되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포털, 언론사 홈페이지 등을 이용하는 국민 누구에게나 무방비로 광고가 공개된다.


느리고 신통치 못해 보이는 대책들


이런 심각한 광고를 막을 수는 있을까? 제재는 되는 것일까? 게임은 플랫폼에 상관없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4조(광고 및 선전의 제한)에 따라서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이 법에 의하면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게임 광고는 광고와 게임물의 내용이 다르거나, 등급정보를 다르게 표시했거나, 게임 사행 행위를 조장하는 내용을 포함할 경우에만 규제할 수 있다.


그러나 저질 게임 광고로 인한 폐해가 게임산업 전반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음을 게임산업계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5월, 게임물관리위원회와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게임 광고 문제 해결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들은 '게임불법광고 근절을 위한 다자간 업무협약'을 통해 3자간 게임 광고에 대한 공동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게임 광고 자율규제 방안 등을 조사하고, 게임 광고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정책방안도 마련하고, 게임 광고의 건전화를 위한 예방책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9월에는 한국 게임정책자율기구 산하에 게임광고자율규제위원회가 발족됐다. 민간주도의 자율규제 방식으로 게임광고 심의제도를 보완해보겠다는 취지이다. 위원회는 2020년 10월에 온라인 세미나를 열고, 게임광고 자율심의기준안과 시범 모니터링 결과를 공개했다.


그러나 위원회의 행보는 기대한 것보다 느려 보인다. 십여 차례 회의를 통해 숙고 끝에 세미나를 했지만 게임광고자율규제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확정된 심의 기준도 고지되지 않았다. 정기적 모니터링 보고서도 아직 없다. 위원회가 활발히 활동한다 하더라도, 자율규제기구이기에 한계가 있다. 일단 벌금 부과가 불가능하다. 가장 강도 높은 조치가 '주의'보다 더 심각한 '경고' 조치를 받은 게임사는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정도이다. 이는 기사형 광고 위반 심의 결과를 전부 공개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 조심스럽다.


게임사들이 부적절한 불법 게임 광고를 통해 단시간에 이익을 얻는 일명 '먹튀 전략'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사후심의는 역부족이라며 사전 심의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민경욱 전 국회의원은 게임광고를 사전심의로 바꾸자는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5월에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부적절한 게임 광고를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규제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관련 비판과 대책이 모두 광고주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도 의아하다. 이런 부적절한 광고를 게재함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광고주만이 아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게임광고를 게재하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반의 모든 기업, 언론사들 역시 부적절한 광고로 인한 이익을 얻고 있다.


대형 포털 사이트, 유튜브, 구글 등은 자체 정책에 따라 광고를 게시한다. 하지만 사이트의 유해 콘텐츠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대해 보다 많이 고민하고 투자해야 한다. 사기업이 이를 스스로 잘 해내기란 불가능할 것임으로 우리 시민이 적극적으로 이를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정보를 취합하면서 대책 마련과 대응이 참 느리다는 걸 느꼈다. 느린 만큼 신중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이 나오길 바란다. 그저 무관심 속에서 시늉만 내고, 그 피해는 국민과 소비자만 감당하는 모양새는 돼서는 안 된다. 2021년이다. 시대정신을 생각하면 이제 대한민국에 이런 광고가 설 자리는 없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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