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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안경]이번엔 상속세, 언론의 '이재용 구하기'


29일 한국 언론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상속으로 '도배'됐다.


삼성전자를 통해 발표한 고 이건희 회장의 유산 상속 내용은 대략 이렇다. 유족들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확인됐으며, 세금은 분할 방식으로 5년에 걸쳐 납부할 예정이다. 유족들은 상속세와 별도로 상속받은 재산 중 의료공헌용 1조 원을 기부하며, 미술품 2만 3천 점을 국립기관에 기증하겠노라 밝혔다.


'이번에도' 언론 보도는 이전의 '편들기' 보도와 거의 다르지 않았다. 실제 SNS에는 민망한 수준의 보도를 공유하면서 한탄하는 게시글도 많이 보였다. 실제로 4월 마지막주 언론 보도는 삼성과 한 몸이 되어버린 언론의 현실을 단적으로 들어있었다.

4월 23일부터 30일까지의 종합일간지(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내일신문, 문화일보 총 11종)와 경제지(디지털타임스,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아주경제, 이데일리, 이투데이, 전자신문, 파이낸셜뉴스, 한국경제, 아시아경제, 헤럴드경제 총 12종) 지면 보도를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노골적으로 사면 요구한 '헤럴드경제'

먼저 '이건희'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지면 보도량부터 살펴봤다. 7일간 23종의 신문에 실린 이건희 관련 보도량은 총 293건이었다. 적지 않은 보도량이었지만, 특히 28일 삼성전자가 유족을 대신해 보도자료를 배포한 다음날인 4월 29일 자에 169건이 쏟아져나왔다.


언론이 가장 많이 주목한 것은 '이건희 컬렉션'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이미 몇 달 전부터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와 함께 자주 언급돼왔다. 게다가 '이건희 컬렉션'이 국보급 국가 문화재이거나 세계적인 미술품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호기심이 컸다.


실제 '이건희 컬렉션' 키워드가 들어간 보도는 총 115건이나 되었다. 종합일간지 57건, 경제지 58건으로 모두 '이건희 컬렉션' 관련해 컬러 지면을 할애하여 주요하게 보도한 것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시민에게 공개되는 것이기에 이에 대한 보도량이 많은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건희 컬렉션의 면면을 알려주고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만 강조한 뒤, 이재용 부회장 사면을 언급한 보도는 부적절했다. 이건희 컬렉션 관련 보도 중 사면을 언급한 보도는 총 10건이었는데, 이 중 사면과 연결시켜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29일 <서울신문> '[사설] 삼성가의 역대급 사회공헌, 실행이 중요하다' 뿐이다.


<서울신문>은 '역대급 사회공헌에 대해 사면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없지 않다. 삼성도 이번 사회공헌이 이 부회장 사면과 관련 없다고 선을 긋고, 사회공헌은 발표대로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외의 보도들은 대부분 사면을 슬쩍 언급했는데, <헤럴드경제>는 매우 노골적이었다. <헤럴드경제> '[사설] 삼성가의 통 큰 기부, 국가도 상응한 행동 보여줘야'(4/29)는 '물납 가능성을 아예 포기한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부는 심지어 충격적이다'라고 강조한 뒤, '감정가는 3조 원이라지만 시가는 10조 원이 넘는다는 게 정설이다. 오히려 그런 문화의 정수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국가가 걱정해야 할 일'이라며 삼성의 결정을 극찬했다.


이어 결론으로 '이제 국가도 상응하는 행동을 보여줄 만하다. 그래야 마땅하다. 최선을 다한 기업 일가에 국가가 관용을 베푸는 건 일종의 도리다. 사면 결정에 이보다 좋은 명분과 타이밍은 없다'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사면해주지 않는다면 도리도 모르는 국가가 된다는 셈이다.


상속세 납부까지 '사회 환원'으로 뭉뚱그려 언급

한편 고 이건희 회장 관련 보도 293건 중 '이건희 컬렉션'만큼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사회 환원'(109건, 37.2%)이었다. 물론 이건희 컬렉션 기증과 1조 원 대의 사재 출연을 통한 의료공헌 기부는 훌륭한 '사회 환원'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상속세는 사회 환원이 아니라 법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증과 상속세의 의미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사회 환원' 언급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한편, 징벌적 상속세에 대해 비판하는 보도들이 종합일간지에서 5건, 경제지에서 10건 총 15건이 보도되었다. 그 제목들을 보면 상속세에 대한 걱정과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징벌적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 중에서 상속세율을 비판하지 않은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보도는 <조선일보> '[사설] '반도체 전쟁' 지휘할 사령관이 감옥서 상속세 대출 상담 받는 나라'(4/29)였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이 물려받는 상속 재산의 대부분은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이다. 경영권을 지키려면 팔 수도 없는 자산인데, 현행 세법하에선 지분 절반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상속세를 3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럼 그 기업은 어떻게 되는 건가'라고 읍소하고 있다. 결론은 '기업 승계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징벌적 상속세 체계를 바꿔야 한다'라고 성토하는 것이었다.


경제지도 적극적으로 징벌적 세율의 조정을 요구했다. <서울경제> '10조 내는 삼성가, 독이었다면 5조... 기업가 정신도 사그라든다'(4/30), <이데일리> '12조 넘어가는 삼성가 상속세... 미국이면 7.3조, 영국은 3.6조'(4/29), <서울경제> '[사설] 기술 패권전쟁 속 세계 최악 상속세 족쇄 놔둘건가'(4/30), <파이낸셜뉴스> '[사설] 삼성가 상속, 징벌적 세율은 시대착오'(4/26) 등이 모두 상속세를 우려하는 보도였다.


'징벌적 상속세'를 규탄하는 이들 보도는 이미 적법하게 세금을 내기로 결정한 삼성은 그렇다쳐도, 앞으로는 이런 식이어서는 안된다는 재계나 언론사주의 민원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특히 <세계일보>는 '[사설] 이건희 재산 통 큰 사회환원, 기부문화 확산 계기 삼길'(4/29)에서 '우리 상속세율은 징벌적 수준'이라면서 '상속세 부담이 지나치게 크면 기업 승계를 어렵게 해 투자위축, 일자리 감소, 국부 유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 줄 수 있도록 상속 세재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상속세를 내게 한다면 투자도 고용도 하지 않고, 해외로 국부를 유출시키겠다는 겁박으로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이재용 사면 군불 때기는 계속되고 있어

같은 기간에 '이재용'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를 추출해보았다. 총 291건이 '이재용'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보도였는데, 이중엔 '이건희' 키워드 추출 보도와 중복된 것들도 많다. 그러나 '이건희' 키워드 보도량이 4월 29일에 몰려있는 것에 비해서 '이재용' 관련 보도는 4월 23일부터 꾸준하게 이어졌다. 상속과 관련된 본격적인 보도가 나오기 전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된 논의들이 이어졌음을 볼 수 있다. 4월 23일부터 30일까지 이재용이 언급된 보도 291건 중에서 '사면'이 함께 등장하는 보도는 100건이었다. 이들 보도를 읽어보면 대부분의 논리는 이재용 부회장을 사면해 백신을 수급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를 노골적으로 펼치기보다는 '반도체'를 언급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이재용 사면과 백신이 함께 언급된 보도는 총 31건인데 비해서, 이재용 사면과 반도체가 함께 언급된 보도는 70건이나 되었다. 이 밖에도 '민간외교' '바이든' 등의 키워드도 등장했다. <문화일보> '"반도체 수성‧백신 민간외교 위해…이 '구원 등판' 기회 줘야"'(4/27)에서는 경제5단체장의 이재용 사면 건의를 상세히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 '저커버그‧베이조스‧팀쿡‧머스크…한에 꼭 필요한 '이의 인맥'' 보도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탄탄한 글로벌 인맥'을 강조했다. <한국경제>도 '"올림픽․엑스포도 기업인 덕분…백신․반도체 난제, 이재용에 맡기자"'(4/28)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중경 한미협회장, 노대재 전 공정거래위원장,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등의 사면 주장을 '커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할론'이라는 인포그래픽으로 엮었는데, 여기에 경제단체 부회장(익명)으로 '대통령 방미에 동행해야... 반도체‧백신 동맹외교에 역할'이라는 발언을 넣기도 했다. <서울경제>도 '힘 실리는 '이재용 사면론'... "청, 결단 내려야"'(4/29)에서 경제단체장과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의 요구라면서 이 부회장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모았다. 민간외교를 빌미로 한 이재용 사면 주장의 백미는 <이데일리>가 4월 29일 자 1면에 배치한 '[사설] 이재용 사면 '국민통합, 위기 극복 앞장. 큰 틀에서 보라'(4/29)였다. <이데일리>는 '글로벌반도체패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백신 가뭄의 파고까지 넘어야 할 절박한 현 상황을 생각한다면 청와대와 정부는 모든 국민 중 어떠한 사람의 지혜와 경륜도 마다할 필요가 없다'면서 '결단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2021년 4월 28일 발표된 고 이건희 회장 유산에 대한 상속세 및 기증 관련 보도들은 결과적으로 '이재용 사면'이라는 결론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과 '통 큰 기부'가 얼마나 극적인지 알려주는 군불인 셈이었다. 그 군불은 '이재용 사면'이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결코 무리가 아니며, 국가가 해야 할 도리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여기에 국제 반도체 시장 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필요성, 백신을 구해올 특사로서의 이재용 부회장의 가치까지 온갖 에드벌룬을 띄워보면서 이재용 사면이 국가적 이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4월 마지막 주 언론은 삼성의 홍보실 이상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자신들의 또 다른 자화상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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