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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판결 언론 모니터 보고서

1. 개요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하 연방대법원)이 임신 중지 불법화의 길을 열어주는 판결을 했다. 임신 15주 이후의 임신 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주(州)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로 미국에서 헌법으로 보호받던 여성의 낙태 자기결정권이 폐기되었다. 이는 1973년 당시 여성의 낙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을 49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 판결이란

미국에서는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주에서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낙태를 불법으로 보고 처벌했다.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의 노마 맥코비라는 여성이 강간을 당해 임신했다고 주장하며 낙태 수술을 요청했는데, 임신부의 생명이 위독하지 않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 이에 맥코비는 변호사 린다 커피, 사라 웨딩턴을 대리로 해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이 이름과 소송의 피고인이었던 댈러스카운티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의 이름을 따 소송의 명칭이 '로 대 웨이드(Roe v. Wade)'라고 불렸다. 지방법원을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 대법원은 1973년 1월 22일 7대2로 낙태 금지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여성은 임신 후 6개월까지 임신중지를 선택할 헌법상 권리를 가진다”, “수정헌법 14조 규정된 권리주체인 사람에는 태아가 포함되지 않는다. 생명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는 법원이 답할 필요 없지만 임신 당사자의 임신 중지 결정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 권리다”라는 해석했다. 이에 따라 임신 3개월까지는 모두 허용, 그 이후 3개월은 임신 당사자 건강에 대한 의사 판단에 따라 의사 선택권 부여, 그 이후에는 임신 중지를 금지하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임신 중지를 여성 당사자의 결정권에 맡긴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여성이 임신 초기에 임신 중지를 원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판결이 되었다.

로 대 웨이드 판결로써 여성의 성적 결정권을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고 본 역사적 판결이었다. 이 판결에 따라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기존의 법률은 위헌이 되기에 폐기되었다.

플랜드페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Planned Parenthood v. Casey) 판결이란

1992년 연방대법원은 펜실베이니아 남동부 플랜드 페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Planned Parenthood v. Casey) 사건에 대한 판결로 헌법이 낙태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 판결에서는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의 삼분법 기준을 폐기하였다.

이는 의학 기술의 진전에 따라 생존 가능성에 대한 종전의 기준(임신 3분기에서부터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태아의 자궁 밖 생존 가능성이 있기 이전에는 여성의 권리가 태아의 권리에 우선한다고 하면서 생존 가능성 이전의 낙태에 대해 ‘부당한 부담’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생존 가능성 후의 낙태는 금지할 수 있되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낙태를 허용하도록 했다.

이 판결은 낙태 반대 규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주 정치인들은 종종 법원의 새로운 판결의 헌법적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노력으로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수백 개의 비싸고 부담스러운 제한을 통과시켰다.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 폐기 판결

2022년 6월 24일, 연방대법원이 미시시피 주법으로 제정된 임신기간법(Gestational Age Act, 의료적 응급상황이나 태아에 심각한 건강 이상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임신 15주 이후에 행해지는 낙태를 금지하는 주법)이 헌법상 확립된 임신 중지 권리에 반한다는 잭슨 여성건강기구의 이의제기 소송에서 합헌을 선고했다. 9인의 연방대법관 중 6대 3으로 합헌을 선고함으로서 ‘로 대 웨이드’ 판례는 파기되었으며 각 주법에 따라 임신 중지를 불법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이 없다” “이 판결은 임신중지 문제를 국가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논란을 악화하고 분열을 심화시켰다” “임신중지 규제할 권한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이 가진다”는 논리로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하는 사생활 권리에 임신 중지 권리가 포함된다’는 ‘로 대 웨이드’ 등 기존 판단을 뒤집었는데 이에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즉 가장 기본적 인권을 ‘국론 분열’ 프레임으로 오염시키고 ‘선택의 문제’로 축소했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쏟아졌다.

이는 미국인들의 임신 중지 권리를 박탈한 판결로, 미국 내에 있는 임신 가능한 수백만 명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결과이다. 사람들은 원치 않는 출산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안전하지 않은 임신 중지를 찾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제 미국인들은 임신 중지를 받기 위해 수백 km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으며, 이런 피해는 특히 소외계층, 저소득 계층, 성폭력 피해자 여성에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언론은 3,300만 가임 여성이 자기가 사는 주에서 임신 중지 시술을 못 받게 될 것이라고 봤다. 50개 주 가운데 임신 중지를 허용하는 주는 동부 뉴욕 메릴랜드, 서부 캘리포니아 등 16개 주와 수도 워싱턴이다. 텍사스 위스콘신 켄터키 등 13개 주는 대법 판결과 동시에 임신 중지 금지령 발효했다. 또한 추후 26개 주가 임신 중지 전면 금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임신 중지 알약을 구입하는 여성이 폭증하자 텍사스 등 일부 주에서는 주민의 원정 임신 중지 시술은 물론 임신 중지 알약 구매까지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해 반발이 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동하여 임신 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명령을 공포하고 미국 대기업들도 잇따라 임신 중지 여성 지원책을 발표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2. 모니터 개요와 양적 분석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임신 중지 지원 움직임, 임신 중지 권리에 이어 동성혼 등 성소수자 권리 축소 가능성 등 사회적 파급 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한국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에 사안을 한국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분석해보았다.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판결이 나온 6월 24일부터 8월 7일까지 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서‘로 대 웨이드 판결’키워드 검색을 활용해서 기사를 추출했다. 그 결과 관련 보도는 총 399건이었다. 이를 판결에 대한 긍․부정 논조 및 판결의 영향, 기타 사안 등 보도 내용을 기준으로 분류해보았다. 기사 분류는 제목과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지배적 기조나 내용을 기준으로 삼았다. 해당 결과는 <그림1>과 같다.


△ <그림1>‘로 대 웨이드 판결’ 언급 보도 전체 분포(6/24~8/7 빅카인즈 기준 총 399건)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한국 언론은 판결에 대한 부정 보도가 45%로 가장 많아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룬 기사, 즉 비판적 내용이 지배적인 보도가 181건(45%)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9년 4월 11일 한국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및 최근 여성 인권이 화두가 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언론 보도의 절반 가까이는 판결을 비판적으로 다룬 것이다. ‘부정’ 보도에는 판결에 반대하는 여론의 목소리를 전한 보도,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 등 판결에 반대하며 나온 공식적 입장을 전한 보도, 판결을 언론사가 직접 비판한 의견 기사를 모두 포함했다.

부정적 논조를 담은 보도를 보다 세분하면 <그림2>와 같다.


△ <그림2> ‘로 대 웨이드 판결’ 언급 보도 중 ‘부정 보도’의 세부 구성

(6/24~8/7 빅카인즈 기준/ 부정보도 총 181건)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부정적 보도 중에서 48%인 87건은‘대응 전달’보도였다. 이들 보도는 바이든 대통령의‘임신 중지 권리 보장’ 행정명령, 연방대법원을 향한 공식 비판 등 정부 차원의 대응을 전한 것이었다. 사안의 이해를 돕기 위해 1973년‘로 대 웨이드 판결’을 설명한 보도도‘대응 전달’보도에 포함했다.

미국과 전 세계의 ‘반대 여론’을 전한 보도는 35%인 64건이다. 언론사가 직접적으로 미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놓은 의견기사도 30건(17%)이나 되었다. 해외 이슈임을 감안하면 비판적 의견기사 30건은 상당한 수치다.

판결에 대한 긍정적 보도가 77건(19%)로 부정에 비해 매우 적어

두 번째로 비중이 큰 보도는 판결을 긍정적으로 다룬 기사였다. 대다수는 YTN <美대법원, '낙태 합법' 판례 폐기..."주별로 낙태금지 가능">(6/24)와 비슷하게 판결이 나오자 그 내용을 전한 ‘발생 기사’들이다. 여기에는 헤럴드경제 <美대법, 이번엔 ‘온실가스 규제’ 제동>(7/1)처럼 연방대법원의 다른 보수화 양상 판결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 폐지’를 함께 언급한 기사도 있었다. 또한 경향신문 <보수우위 미 연방대법원의 거침없는 역주행...어떻게 견제할까>(6/26)와 같이 연방대법원 대법관 이념 성향 구성에 따른 ‘보수화 우려’ 및 그에 대한 대책 강구를 전한 기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긍정’ 분류 기사에는 6월 24일 판결이 나오자 이를 곧바로 전한 발생 기사는 물론, 판결에 동조하는 여론을 전한 보도, 판결을 언론사가 직접 옹호한 의견기사를 모두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에 비중에 그쳤다는 점에서 한국 언론이 기본적으로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 임신 중지 권리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판결에 대한 ‘중립’ 논조 보도는 17건(12%)

총 47건(12%)의 ‘중립’ 논조의 보도는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한 찬반 양론을 모두 담은 사례들이다. 대부분은 미국 내 격론을 인용하는 식이었다. 경향신문 <미국, 임신중단권 폐지 폭풍 속으로 "임신중단 금지 이행" vs "투표장으로">(6/27) 등 연방대법원으로 격론이 벌어진 미국 사회의 풍경, 논쟁을 그대로 전한 통상적인 보도 양상이다.

판결 이후의 영향, 파급력을 전한 보도가 58건(17%)

판결의 영향을 다룬 기사는 68건, 17% 비중이다. 미국에서 판결이 나오자마자 임신중지 약을 온라인에서 구매하려는 시도의 폭증, 원정 임심중지 시도의 폭증, 구글 등 대기업의 임신 중지 지원 움직임, 임신 중지 권리에 이어 동성혼 등 성소수자 권리 축소 가능성 등 사회적 파급 현상이 나타났고 한국 언론도 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연방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임신 중지 금지법을 발표한 오하이오주에서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10세 아동이 임신 6주인 상태에서 임신 중지 시술을 받지 못해 인디애나주까지 이동해야 했단 사건이 미국 언론을 통해 다수 인용됐다.

한편 다른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룬 기사에서 연방대법원 판결 사태가 단순 언급된 사례는 ‘기타’로 분류했다. 이런 보도는 26건(7%)이었다. 특히 중앙일보 <美임신부의 다인용차선 질주…딱지 끊기자 그녀가 가리킨 곳>(7/10)와 같이 단순 인용한 기사들이 많았다. 중앙일보 보도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홀로 운전하던 임신부가 다인용 차선에서 교통 딱지를 끊기자 태아도 사람이라며 범칙금 납부를 거부한 사건을 담았다. 이러한 보도는 연방대법원 판결의 파급이나 의미를 전혀 전달하지 않으면서 ‘태아 생명권’이라는 주요 쟁점을 흥미 위주의 사건으로 치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3. 개별 보도 평가

1)‘생명권 대 낙태권’프레임 보도 아쉬워

2022년 2월과 3월, 세계산부인과학회와 세계보건기구는 잇따라‘임신 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모든 국가에 촉구하면서 임신 중지는 형법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건강권과 사회적 권리, 성 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권 vs 낙태권’ 구도의 논쟁으로 14주, 24주 등 임신중지 가능 기한 설정에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이에 따라 대부분의 당사자 여성이 임신 초기에 임신 중지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시기를 놓쳐 고통받게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형법에서는 임신 중지 권리 관련 단서 조항이나 금지 조항을 없애야 하고 태아의 생명권이 언제부터 발생하는지는 과학과 사회적 논의의 영역으로 남겨놔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번 판결 관련 보도 399건 중에서 태아의 생명권을 언급하는 보도들이 건의 보도 중 10%에 해당하는 39건이다. 보도량이 많지는 않지만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낙태권’이라는 프레임에 머물러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명권 대 낙태권’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대표적 사례는 조선일보 <여성은 인간을 낳는 ‘가축’이 아니다>(7/9)이다. 이 칼럼은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의 폭력적인 인구 증가 정책이 여성을 ‘인간을 낳는 가축’으로 바라보면서 낙태도 엄벌에 처했으나 정작 유아 사망률이 폭증하여 실패했음을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결론에서는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구호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전하게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단순한 ‘선택’ 여부를 떠나 건강 및 생명권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연방대법원 판결을 강력히 비판했다. 대단히 권리친화적인 결론이기도 하다.

다만 결론으로 이르는 논리 전개에서 칼럼은 “‘로 앤드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을 “여성의 선택권이냐, 태아의 생명권이냐 하는 갈등”의 산물로 규정하더니 “‘태아의 생명권’을 옹호하는 입장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될 때부터 ‘생명’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 “‘태아의 생명권’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인공수정은 동시에 낙태이며 수정란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소리”라고 했다.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배격하는 대표적 논리에 대한 반박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또 다른 갈등과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주관적 단언에 가깝다.

‘태아의 생명권 발생 시기’는 여전히 사회적, 과학적, 종교적으로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별개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렇듯 ‘생명권’ 논리를 논박하는 데에 중점을 두다보니 “기독교와 달리 유대교는 여성의 낙태를 죄악시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낙태 시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면, 유대교를 믿는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낙태 시술을 할 권리가 있어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했는데 이는 이 칼럼이 강력히 주창하는 ‘여성의 임신중지 자기결정권’에 일정 정도 반하는 내용이다. 임신 중지 권리가 완전하게 보장되려면 의사의 종교와 관계없이 의료 접근성도 보장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 구도에 갇힌 논의의 한계가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2) 유일하게 판결을 적극 동조하는 보도 내놓은 국민일보

연방대법원의 역주행에 대해서 ‘긍정’ 논조를 보인 보도는 대부분 직접적으로 옹호하기보다는 해당 사안을 전하면서 긍정적 입장을 담은 정도였다. 이번 사안의 경우 국내외에서 모두 대체로 연방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여론이 우세하기 때문인지 주로 비판 여론을 다룬 보도가 많았다. 그러나 국민일보에서는 판결에 동조하는 여론을 전하는 보도와 언론사가 직접 판결을 두둔하는 의견기사를 내놨다. 각각 1건, 2건일 정도로 보도량은 극소수였으나 타 매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보도 사례다.

국민일보 <교계 “국내 낙태반대 운동에도 힘실릴 것” 환영>(6/27)는 연방대법원 판결에 “환영의 뜻”을 밝힌 “생명 존중을 외쳤던 국내 교계와 관련 캠페인을 벌여온 시민단체들”의 입장을 전했다. 이 보도는“로 대 웨이드 판결은 당시 소송을 제기한 이의 거짓 증언과 여성주의자들의 선동으로 내려졌는데 이번에 뒤집혀 원점으로 돌아왔다”, “여성의 행복추구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 등 입증되지 않거나 인권 침해에 가까운 주장들을 그대로 인용했다. 특히 해당 보도는“정부가 발의한 법안은 임신 14주 이내, 출산·양육 여건 안 되면 24주까지 임신중절은 허용하는데 여성의 건강권을 생각해서라도 이 기준을 10주 이내로 앞당겨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쪽으로 개정안이 속히 입법돼야 한다”와 같이 한국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도 받아썼다.

기자 칼럼인 국민일보 <신앙관/60년대 세속화 물결 연상되는 미국>(7/22)은 사실상 정교분리를 부정하는 수준의 근본주의적 시론에 가깝다. 칼럼은 7월 16일 한국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연설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를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적인 세속화 물결이 급진전했다는 평가”의 사례로 지목했다. 이어 느닷없이 신앙과 자유, 인권의 가치를 갈라치기 했다. “로마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은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적인 기독교 신앙관에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보이고, “반면 그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크게 옹호”하기 때문에 “전통적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정책들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칼럼은 이를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기독교 신앙관의 전통적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정책’으로서 “동성애, 트랜스젠더, 낙태 옹호”를 지목했다. 이어서 ‘동성애 전환치료 금지법안’, ‘트렌스젠더 군복무 허용’, ‘백악관 주요 직책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임명’,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결정 강력 비판 및 이동 낙태 수술 허용 행정명령’ 등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을 열거하더니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세속화의 물결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일렁이는 분위기”라 평가했다. 여기에다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도 소환하여 “그가 취임한 이후 미국 사회에선 굳게 지켜져 온 기독교적 가치관이 크게 사라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우선 ‘정교분리’ 원칙이 확립됐다”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전통 기독교 가치가 무너지고 세속화와 정교분리의 확립’을 한탄하듯 기술한 칼럼의 결론은 “미국도 유럽처럼 문란한 세속화가 일반적인 양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성경을 기반으로 본다면, 이의 결과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참혹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해본다”는 심경 고백이다. 임신 중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물론 성소수자 권리, 심지어 ‘정교분리’라는 아주 기본적인 근대국가의 원칙까지 ‘문란한 세속화’로 규정하는 매우 구시대적인 발상을 드러낸 칼럼이다.

국민일보의 판결 비판 보도도 있어

한편 국민일보는 판결을 옹호하는 칼럼을 냈지만, 비판하는 의견기사도 내놨다. 국민일보 <돋을새김/미국의 퇴행>(7.5)은 이영미 영상센터장의 기자 칼럼이었는데 이번 판결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칼럼은“성폭행범 아기를 사산한 10대 소녀가, 갱단 멤버에게 성폭행당한 뒤 가진 줄도 몰랐던 죽은 아기를 낳은 여대생이, 그리고 혼외 아이를 유산한 30대 여성이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며 참혹한 ‘엘살바도르 사례’를 제시했다. 이어 미 연방대법원 판결을 향해 “돌려쳐도 다치는 건 여성”,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임신 중지를 효과적으로 줄였다고 해보자. 그게 끝일까. 모든 임신부가 태아를 안전하게 키우는 건 어떻게 확인하나”, “디스토피아 소설 같지만 현실” “퇴행에는 반발이 따른다”며 강력한 비판을 가했다.

3) 상세한 분석 없이 사진 위주로 전달하여 선정적 소비에 그친 보도

서울신문 <미 보수 정치인이 ‘강간 피해 소녀도 출산해야 하나’ 질문에 내놓은 답>(7/4)은 “낙태법을 두고 미국 안팎에서 찬반논쟁”이 벌어진다며 그 중 판결을 옹호하며 임신 중지 불법화 조치에 나선 주정부 관계자 입장을 인용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리드문부터 “낙태법을 두고 미국 안팎에서 찬반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우스다코타 주지사가 성폭행으로 임신한 피해 소녀의 사례에 대해 밝힌 의견에 눈길이 쏟아졌다.”이다. 오하이오주에서 성폭행으로 임신이 된 10세 소녀가 오하이오 주 정부의 낙태 금지 선언으로 인디애나까지 건너가 시술을 받았던 사건에 대해 크리스티 노엠 사우스다코다 주지사가 밝힌 의견을 전하면서 “눈길이 쏟아졌다”고 표현한 것이다. 굳이 이런 식으로 기사의 흐름을 작성할 필요가 있었을까? 기사는 크리스티 노엠 주지사가 “아무도 10세 소녀를 강간한 끔찍하고 정신 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비극적인 상황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 <이 시각/낙태권 판결로 두 쪽난 美… 시위 여성이 가짜 피 뒤집어 쓴 이유>(7/5)의 경우 내용보다는 사진 위주로 사안을 전했는데 그 결과 자극적인 이미지만을 소비했다는 인상이 짙다. 보도는 낙태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가진 활동가가 맞서는 사진 2장과낙태 찬성 입장의 퍼포먼스 모습을 담은 사진 2장을 실렸다. 보도는“미국 전역에서 연일 찬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대법원을 비판하는 의미로 한 여성은 온몸에 가짜 피를 뒤집어쓴 채 시위에” 나섰고, “쇠사슬이 감긴 여성 토르소(몸통)에 ‘정부 재산(Government Property)’이라 쓴 피켓을 들고 낙태 권리를 요구했다. 정부가 여성의 몸을 사유화해 낙태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비꼬았다”고 전했다. 또한 “낙태 종식(End Abortion)” “낙태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들자(Make abortion unthinkable)”라며 “대법원이 제대로 된 결정을 했다고 주장”한 시위의 목소리도 덧붙였다. 평범한 중립 논조 보도로도 볼 수 있지만,

이 기사는 이번 판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이 ‘온몸에 가짜 피를 뒤집어쓴’ 여성을 사진과 함께 매우 간단히 받아쓰면서 시위의‘격렬한 갈등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선정적인 인상을 주는 보도였다.

4) 미국의 정치사회적 배경까지 검토하는 등 심층적인 한겨레 보도 돋보여

판결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구체적 비판이 담긴 바람직한 보도 사례는 상당히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한겨레 <한겨레S/현실이 된 불길한 예견, 여성 임신중단권 폐지>(7/22) 제하의 칼럼이다. 이 칼럼은 영화감독 강유가람 씨의 칼럼으로서 2018년 미국 다큐멘터리인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를 소개하며 연방대법원 보수화의 정치적 과정을 정리했다. “미국 공화당이 어떻게 보수 기독교 세력과 결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다져 나가는지 꼼꼼하게 살펴”본 영화를 통해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까지도 여성의 임신 중단권을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나 “이들은 대통령직에 도전하면서 보수 기독교 세력의 표를 받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바꿨”고, “대통령이 된 그들은 보수 인사를 연방대법원의 판사로 임명해 표에 대한 보답을 하며 여성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의료 이슈였던 여성의 임신중단 권리는 정치 이슈가 되어버렸다”는 결론에서는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가 권리 보장을 위한 ‘의료 이슈’임에도 끊임없이 정치화, 심지어 종교화하려는 시도가 전 세계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이 칼럼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정치세력화한 계기가 인종을 분리한 학교에 세금 감면 혜택이 없어진 것에 반발하며 시작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종 분리, 성소수자 결혼 반대 같은 차별 그 자체”, “심지어 보수 기독교 세력은 관련 병원을 폐쇄시키거나 의사를 살해하는 등 임신중단권에 전방위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라며 혐오와 차별의 위험성을 환기했다.

5)‘한국’의 입법 공백 및 정부의 방치를 비판한 한국일보 보도 돋보여

399건의 전체 보도 중 ‘한국’을 동시 언급한 보도는 45건, 10% 가량이다. 이 보도들은 대부분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온 이후에도 보완 입법 미비로 혼란을 방치한 한국 정부 및 국회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그렇다 보니 ‘한국’을 동시에 언급한 보도 중 미 연방대법원 판결을 긍정적으로 다룬 기사는 단 1건도 없다. 최소한 중립적이거나 ‘판결의 영향’ 차원에서 한국에 미칠 파급을 전했고, 다수는 ‘입법공백 상태’를 비판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측면에서 볼 때 모두 꼭 필요한 보도들이라 할 수 있다.

입법 공백 및 정부의 방치를 비판한 기사의 대표 사례는 한국일보 <이슈밀착/ '낙태죄 잠정 폐지' 3년 병원 가긴 여전히 힘들다>(7/13)이다. 논설위원이 작성한 이 기사는 의견기사이면서 한국 임신 중지 권리 실태와 관련된 실증적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다. 먼저 실제 임신 중지를 한 여성들의 사례와 인터뷰를 전한 후, 기사는 “회는 헌재가 기한으로 정한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완료하지 못했고, 우리 사회는 이로써 낙태죄 처벌은 무기한 중단됐지만 모자보건법상엔 중절 요건 제한 규정이 그대로인 모순적 상황을 맞았다. 불법의 그늘이 걷혔다지만 여성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체계는 좀처럼 갖춰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입법공백 상황’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전기를 맞았”으며 “국내에선 전 세계 비판 여론과 공조하며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다 신장시켜야 한다는 요구와 이참에 태아 생명권까지 감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맞부딪치며 대체 입법 논쟁이 다시금 가열되는 분위기”라고 경고했다. 이어서 “낙태죄 완전 폐지(권인숙 이은주)부터 임신 10주까지만 낙태 허용(서정숙)까지 편차가 커서 접점을 찾기 힘들었”던 국회의 법안 논의가 결국 중단된 상태라는 사실, 그 와중에 “산부인과 단체들은 앞서 입장을 정한 대로 임신 22주 이후 중절 시술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점, 후속 행정이 없던 탓에 여전히 임신 중지 시술을 꺼리는 의료 현장에서 “거주 지역에서 중절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기 어려웠거나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응답자 비율은 권역별로 최저 51.5%(서울), 최고 64.7%(광주·전라)에 달했다”는 조사 결과(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3월 임신중절 경험자(44세 이하) 60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까지, 기사는 총체적으로 한국의 상황을 정리했다. 결론적으로는 “입법 공백의 1차적 책임은 법 개정을 주도해야 할 국회와 정부”라고 강조했으나 이 기사도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이라는 구시대적 구도를 차용했다는 점은 아쉽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개입한 문제이다 보니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라고 현상을 전달한 쪽에 가까운 기술이기는 하나 총체적인 비판 속에 이러한 논의 구도 자체에 대한 성찰적 해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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